계시판

호국 보훈의 달을 앞두고 6.25를 생각해 본다.

레토코리언스 2014. 5. 22. 06:03

 

 

호국 보훈의달을 앞두고 6.25 를 생각해 본다.

 

Ⅰ-Ⅰ

1950년 6.25일, 일요일

북괴군이 새벽 4시에 38선 전역(옹진.개성.의정부.포천.춘천.강릉)에서 소련제 땡크를 앞세우고 전면 남침을 단행했다.

속수무책인 우리군은 3일만에 수도 서울을 빼앗기고 한강방어선을 급조 구축하여 시간을 끌고 있었다.

그것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한강 인도교의 폭파와 그리고 미공군의 한강철교 폭파(반파 이하)로 사실상 시간을 얻고 있다고 하는 것이 옳은 말일 것이다.

 

Ⅱ-Ⅰ

미극동군사령관 맥아더 원수는 6월 28일 수원 비행장에 착륙 후 전황이 급박한 최 전선 수도 서울 이남  한강 방어선(영등포 교외)을 전격 시찰하였다.

이때, 수원의 미극동군 전방지휘소에서 맥아더 원수는  채병덕 육군총참모장과의 짦은 대화, 보고와 질문을 통해서 한국군의 수장을 바꾸어야 되겠다는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바로 이틀 후 6월 30일부로 미국 유학에서 급거 귀국한 정일권 장군으로 전격 교체되었다.

또한 한국군의 전투력을 현지에서 직접 확인한 맥아더 원수는 미육군의 신속한 투입을 결심하고 미 제24사단 선발대 스미스 특수임무 부대가 7월 1일 항공 수송으로 일본에서 부산에 급파되어 열차편으로 대전으로 이동한 후, 7월 5일 오산 죽미령에 전투배치가 이루어졋다.

이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한국인에게 미육군의 한국전선 배치는 실로 놀라운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Ⅱ-Ⅱ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