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신앙생활

김진홍 목사, 하나님 사랑 겨레사랑(5)

레토코리언스 2013. 3. 8. 12:04

 

 

 

           김진홍 목사,

하나님사랑 겨레사랑(5)

2013-3-8

양정중학교에서 지리과목을 가르치던 교사 김교신은 지리시간에 지리는 절반 가르치고 나머지는 학생들에게 민족혼을 깨우치는 강의를 하였다. 시간이 지나자 일본경찰이 이를 눈치 채고는 김교신 선생을 교단에서 추방시켰다. 그리고 성서조선지에 실은 글이 반일문서라 규정되어 함석헌 송두용 유달영 등의 12명 동지들과 함께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 후로 실업자가 된 선생께서는 생업을 찾아 흥남비료공장에 기숙사 사감으로 취직하였다.

당시의 노동자들은 밤마다 도박판을 벌이고 월급을 타면 술값으로 허비하며 지냈다. 도박하고 술 마시니 싸움이 그치지를 않았다. 일본인 경영자들은 조센징들은 으레 그런 거라 치부하고는 그냥 버려두고 있었다. 그러나 김교신 선생께서 사감으로 들어간 이후로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선생은 밤마다 도박판을 찾아다니며 노동자들을 설득하였다.

"여러분 조국은 망하여 일본의 종살이 하는 터에 여러분이 이렇게 허구한 날 도박에 매달리면 여러분 개개인은 말할 것도 없겠거니와 이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발 도박을 끊고 건실하게 삽시다."

노동자들이 처음에는 욕을 하고 행패도 부리고 미친놈이라고도 하였으나 선생께서 진심을 담아 계속하니 노동자들도 감동하여, 도박을 끊고 술을 절제하고 싸움이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그런 차에 전염병 장질부사가 기숙사에 밀어닥쳤다. 비료공장 사무처 일꾼들은 전염되지 않으려고 모두들 피하였다. 그러나 사감 김교신 선생은 환자 한 명 한 명을 찾아다니며 간호하고, 죽으면 시체를 수습하기를 계속하였다. 그러기를 밤낮 쉬지 않고 계속하니 선생을 아끼는 지인들이 간곡히 권하였다.

"지금 해방의 날도 가까워오는 시국인데 선생께서 그렇게 과로 하시면, 환자들을 돌보시다 감염되어 잘못되면 해방의 날도 보지 못하게 될 것이요. 제발 한동안 기숙사에서 나와 피하시요"

그러나 선생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답하였다.

"동포들이 사경을 헤매고 있는 터에 내가 살겠노라고 그 자리를 피한다면 내 어찌 크리스천이라 할 수 있겠소!"

이렇게 답하며 그 자리를 지키다 결국은 감염되어 숨졌다. 바로 해방되기 불과 네 달 전, 선생의 나이 45세 되던 1945년 4월 25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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