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에서 봄의 찬가(3)
책상위에 놓인 1800자 한자교본을 보고 나는 피식 웃어본다. 그 책을 89년도에 구매 했으니 나와 친구가 된지도 어언 25년이 넘어섯다. 그래도 아직 그 책 한 권을 완전히 소화해 내지 못하고 있으니 어쩌면 나도 한심한 놈인지 모르겠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자와 연관된 나의 일화 하나를 꺼내 보고자 하는 것이다.
군대시절 이야기다. 그때는 아파트도 없고 민가에서 보금자리를 세들어 살았는데 전기라는게 전력이 약해서 백열등 불빛이 희미하기 짝이 없었다. 그 밑에서 책을 읽는다는게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아내가 다가와 "여보, 훈련 출발 하기 전에 애기 이름 이쁘게 지어주세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서 말이 나온김에 바로 작명 작업에 착수했다. 우선 여자 아이니까 항렬 고려 없이 이쁘게 짓데 나의 바램을 담기로 하고 우선 한글로 "소영"이라고 짓고, 섬김으로 빛나라는 나의 바램을 담아 한자를 찾아서 적어 주고는 등록하라고 해 놓고는 이삼일 후에 나는 훈련을 떠나서 한 달 후에야 복귀했다.
딸애 이름은 하소영으로 등록되었고 한자를 병기하고 본적지로 행정발송이 다 이루어 졌다. 아내와 이른 저른 이야기 끝에 아는 군인가족 멪이서 자기네 아이들 좋은 이름 짖기위해 작명소에 들렸는데 간김에 내가 지어준 딸애 이름(한글과 한자)이 어떠냐고 작명가에게 물었더니,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이 이름을 누가 지었습니까?" " 저의 남편이 직접 지었습니다." "남편되는 분이 뭐 하시는 분 이십니까?" 육군 대위라고 하니 " 아! 예, 그러면 그렇지요 , 보통분이 아니군요, 딸애 이름을 너무 잘 지었습니다. 대길할 이름입니다" 하였다고 아내가 내게 자랑하며 전해주었다. 그 말을 전해 듣고는 그날은 최고로 컨디션이 좋았다.
다음날 부대로 출근해서 딸애 이름을 적어 두고는 자신 만만하게 딸애의 한자 이름을 살펴 보았다. 아뿔사! 이게 어찌된 일인가? 순간 나는 앞이 캄캄했다. 섬김으로 빛나라는 나의 바람은 송두리째 무너지는게 아닌가 하며 얼굴이 붉어져 오며 이쁜 딸애 얼굴과 아내의 실망스런 모습의 얼굴이 뜨 올랐다. 섬길소가 아닌 성길소(疏)였다. 섬길소라는 한자는 원래 없었다. 보통 낭패가 아니다. 혼자 걱정을 태산같이 하다가 또 일가견이 있는 지인에게 물었더니 이름을 아주 잘 지었다네요, 이유인즉 생명의 에너지라고 할 물과 빛이 성길소로 인하여 막힘없이 서로 소통하니 아이의 장래가 대길하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25년이 넘도록 아직도 1800자 한자를 소화해 내지 못하고 있고, 초급장교 시절에다 희미한 백열등 불빛 덕분에 딸애 이름 한자를 옥편에서 잘못 읽고 지은 것이 오히려 잘 짖게 된 결과를 만들게 되었다. 이름 덕분인지 몰라도 딸애가 시집가서 넉넉하게 부족함 없이 잘 살고 있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름이 정말 중요한 것이 사실인가? 내 이름은 우리 할아버지가 지어 주셨다는데 친구들이 추가로 작명하여 "하루종일"이라고 하며 하루종일 뭐하는냐고 장난을 걸어 온 지난날이 생각난다.
이름 덕분인지 나는 하루종일 일한다. 그래서 지금도 은퇴를 잊고 열심을 다하고 있는지 모른다. 금년에는 무슨일이 있어도 1800자 한자교본을 세 번은 독파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하루종일 한자 공부하다 보면 뭔가 이루어 지겠지... 요즘 정치권 보면 이름이 중요하기는 중요해 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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