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 원수는 8성 장군 이었다.
1950년 9월 9일 워싱톤으로 부터 전문이 날아왔다.
"우리는 귀하의 (작전) 계획을 승인한다. 대통령에게 그 뜻을 전했다."
전문은 간단하였지만,
또 그많큼 오랜 기간에 걸친 논쟁에 마침표를 치는 것으로서는 적절하게 생각되어 맥아더 원수도 감동하였다.
"마음에 드는 전문이다. 워싱톤이 보낸 전문 가운데서 가장 멋진 문장이다"
9월 13일 오후 7시경,
이타쯔기 공군 기지에 맥아더 원수의 새 전용기 스캡(SCAP)이 날아 왔다.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기 위하여 도꾜를 극비에 떠나 온 것이다.
불시에 맥아더 원수를 맞은 아타쯔기 공군 기지는
임시로 준비한 원수의 시보레 승용차에 달 관자(성판)이 없어 참모들이 허둥대고 있었다.
휘터니 민정국장이 사실을 보고했다.
"각하, 갑작스런 방문이라 기지에는 승용차에 부착 할 원수 성판이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4성장군 성판을 부착해야 겟습니다."
원수는 하는 수 없다면서 고개를 끄덕이었다.
잠시 후 맥아더는
"헤이, 코트(민정국장 애칭)
4성장군 성판을 2개를 붙이게 그렇다면 격상되지 않겠나?"
그날밤,
맥아더를 태울 시보레 승용차는 별 8개를 붙이고
50마일을 두시간 넘게 달려 사세부항에 도착 했다.
사세부항에서 지휘함 마운틴 맥킨리호에 승선한 후 파고를 헤치며 인천을 향했다.
성공확률 오천분의일 세기의 도박으로 일명 불려진 인천 상륙작전은 그렇게 시작 되었다.
인천상륙작전 직전에 이미 8성장군이 된 맥아더 원수는
1950년 9월15일 인천 상륙작전에 성공하였고 그 여세를 몰아
9월 28일 수도 서울을 탈환하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8성장군 맥아더 원수는 군인 으로서 최고의 영예
군신(軍神)이 이미 되어 있었다.
그 누구도 흉내 낼수 없는 맥아더의 카리스마는 신념에서 나왔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카리스마의 대명사, 신념의 장군, 8성장군 군신(軍神) 맥아더 원수를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2012년 8월 4일
레토코리언스
올데이 하종일
한국전쟁에서 인용(고지마노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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